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문단 편집) === 그 외 === * 개최 도시는 아니었지만 [[강원도]] [[강릉시]], [[충청남도]] [[천안시]], [[경상북도]] [[경주시]]에 베이스 캠프가 있었다. * 한국의 경우는 사람들끼리 모아다가 반을 갈라서 한쪽은 폴란드를, 다른 한쪽은 포르투갈을 응원하도록 약속하고 응원했으며, 3/4위전에서는 튀르키예와 맞붙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인터넷]]을 통해 널리 퍼진 [[한국-튀르키예 관계|형제의 나라]] 이야기에 힘입어 관중석에서 대형 튀르키예 국기를 내걸어 주기도 했다. 실제로 [[튀르키예]] 현지에서는 한국 응원단의 이런 호의에 감동한 [[튀르키예인]]들이 한둘이 아니었다고. 튀르키예에서도 이때를 튀르키예 축구의 황금기라고 추억하다 보니 현재까지도 이런 호의를 기억하는 튀르키예인들이 꽤나 많은 편이다. 그래서 3/4위전이 열리던 시기에 튀르키예에서 여행중인 한국인들에게 숙박비와 식사비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 형제의 나라로 알려진 [[튀르키예 축구 국가대표팀|튀르키예 대표팀]]은 아예 튀르키예 서포터즈가 있어서 일방적으로 형제의 나라인 튀르키예 위주로 응원을 했다. * 다만 한국 관중들도 세팀만은 찬밥 취급을 했고, 그 세팀은 바로 중국, 미국, 이탈리아였는데, 이탈리아의 경우 한국에서 치른 경기는 한국전 밖에 없었다. * 중국은 악명 높은 [[쿵후축구|소림축구]] 때문에 외면을 받았다.[* 4년전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출정식 전날 대한축구협회에서 차범근 감독조차 반대한 중국하고 친선경기를 치루게 하였고 여기서 황선홍 선수가 큰 부상을 당했고, 이로인해 한국 대표팀은 마르세유 참사를 당했으며, 차범근 감독이 억울하게 경질까지 당했다. 이로인해 반중감정이 폭발했다. 또한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때도 중국의 [[리자쥔]]의 반칙으로 인해 한국선수들이 크게 피해를 보았고 이게 한국인들의 분노게이지를 상승시켰다. 특히 리자쥔은 2000 세계선수권에서도 한국의 [[김동성]] 선수를 고의적으로 스케이트 날로 부상을 입혔다. 그것도 스케이트 날을 김동성의 몸쪽으로 향하게 했는데 이건 명백히 반칙을 넘어서 살인미수를 하려고 한 것이었다. 차라리 아래의 헐리우드 액션으로 금메달을 강탈한 오노조차도 상대방을 다치게 하려는 반칙을 하지는 않으려고 했다는 점에서 악질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또한 나중에는 히딩크호의 4강진출마저 심판매수라고 폄하까지 하는등 혐한행동도 서슴치 않아서 어찌보면 찬밥취급 받는게 가장 당연했던 팀이다.] 몰론 나라가 가깝다보니 한국을 찾은 중국 서포터즈의 규모는 상당한 편이었다. * 미국은 이 당시 극에 달한 [[반미]] 여론 때문에 한국 내에선 가장 외면 받은 팀들이었다.[*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당시 쇼트트랙 금메달 사건과 미국전을 치르고 3일 후 일어난 [[미군 여중생 압사 사건]]이 화근이었다. 다만 여중생 압사 사건은 그 이후에 파장이 더 컸지만. 반면 당시 미국 팀의 일원이었던 [[랜던 도노반]]은 한국전이 열린 [[대구광역시]] 경기장에서 어르신들이 보여준 호의에 감사를 표하기도 했으며, 귀국 후 한인타운에서 한국을 응원하기도 했다고 한다. [[대구광역시]]는 알다시피 보수 성향이 상대적으로 강한 데다가 한국의 보수는 대개 친미적이라 딱히 이상할 것도 없다.] * 이탈리아는 한국과의 16강전을 이틀 앞두고 나온 [[프란체스코 토티]]의 자만섞인 기자회견으로 경기 당일 관중들로부터 집단 야유를 받았으며, 발언의 주인공 [[프란체스코 토티]]는 연장 전반에, [[할리우드 액션]]으로 [[페널티킥]]을 유도하려다가 실패하고 이를 발견한 [[비론 모레노|심판]]에 의해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했으며, 결국 [[프란체스코 토티]]가 쫓겨난 이탈리아는 연장 후반 12분 [[안정환]]에게 골든골을 내주고 1대2로 역전패를 당하며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전반전에도 [[김남일]]의 얼굴을 손등으로 가격하여 경고를 먹은 [[프란체스코 토티]]였다.] * 월드컵 본선에 오지 못한 나라들의 대형 국기가 경기장에 종종 걸리기도 했다. [[웨일스]] 국기나 [[이스라엘]] 국기 등등. 이쪽 나라 축구팬들이 구경와서 자국팀도 언젠가 월드컵에 진출하기를 바라며 걸어놓은 것도 있지만, 지역적 혹은 정치적인 앙숙인 국가를 도발하기 위해 내걸기도 했다.[* 이와 비슷하게 유로 대회에서도 이탈리아를 도발하려고 상대국 팬들이 태극기를 올렸다.] 한국 대표팀 경기에는 항상 네덜란드 국기가 걸려 있었는데, 이는 히딩크 감독의 고국이 네덜란드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2002 월드컵 진출에 탈락해서 기가 죽었던 네덜란드 사람들도 나름 위로를 얻었다고. 거기다 히딩크호가 승승장구 하니 "아이 신나~" 분위기. * 오래전부터 한일 월드컵이 개최된 2002년에 태어난 사람들을 대중들 사이에서 '월드컵둥이' 혹은 '월드컵 베이비'라는 별칭으로 불러왔다. 그러나 월드컵 베이비 여부에 대해서 여러 의견이 분분한 편인데, 월드컵이 개최된 2002년에 태어난 사람들을 월드컵 베이비로 할지 아니면 월드컵 4강에 진출한 6월달에 태동하여 이듬해 4월달에 출생한 2003년생을 월드컵 베이비로 할지 많은 의견 대립이 생기는 현상을 볼 수 있다. 대중들은 단순히 월드컵 당시에 태어난 2002년생을 월드컵 베이비로 대다수가 인식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월드컵 덕분에 신생아 수 증가에 따른 출산율 회복의 효과를 본 2003년생이 [[월드컵 베이비 붐]]에 부합된 명확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이로인해 많은 2003년생들은 자신이 월드컵 베이비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 하며 2002년생이나 2003년생 모두 성인에 갓 진입했다. 2023년에는 월드컵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2004년생이 성인에 진입한다. 또 월드컵 대표팀의 구성원들의 일부 자녀들은 대를 이어 축구선수가 되었고 프로에 데뷔했다. || [youtube(54ekQ_Hw_jQ)]||[youtube(Tmu0wpYG9QA)] || * 위에 서술에 이어서 [[1988년 서울 올림픽]] 다음으로 한국 현대사에 미친 영향이 엄청난 사건인 만큼 월드컵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이 성인에 진입하기 전 까지는 '2002년 월드컵을 기억하는가?'가 월드컵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 사이에서 젊은 세대와 나이든 세대를 구별하는 대표적인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월드컵을 기억 못하는 세대도 아니고, 월드컵이 개최된 2002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이 2021년 이후에 성인으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에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에 따라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그래서 현재는 월드컵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을 나이든 세대로 월드컵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을 어린 세대로 구별하는 풍습으로 바뀌었다.[* 한일 월드컵때 전국민들과 함께한 실질적인 마지막 세대인 2000년생과 2001년생을 포함한 1990년대 후반생까지는 비록 월드컵을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월드컵 당시에 날짜가 나오는 필름카메라로 찍은 붉은 악마의 비 더 레즈 티를 입고 응원하는 사진이 각 개인의 가정 사진첩에 수록되어 있을 것이다.] * 기본적으로 2000년대 초반의 일이기도 하고, 새천년과 뉴 밀레니엄을 맞이한 국민들에게는 IMF 외환위기의 아픔을 이겨나고 맞이한 대축제 였던지라 한국인들에게는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대회이며 [[유튜브]]에서 고화질로 업로드한 당시 일부 경기 영상을 접한 대중들은 깨끗한 화질로 2002년을 처음 볼 수 있어서 매우 신기했다고 한다. 기성세대 사이에서는 그렇게까지 먼 이야기로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많지만 2023년 기준 벌써 21년이나 흐른 사건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2002년 월드컵까지의 기간보다 2002년 월드컵부터 2023년까지의 기간이 훨씬 더 길기 때문에 그 사이에 엄청난 사회적 변화가 있었다. * 임산부들에게는 힘들었던 시기 중 하나. 특히 이해 7월에 아이를 낳은 임산부들은 고통을 겪어야 했는데, 이때는 거의 만삭이라 아직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태아들이 신생아의 시력, 청력, 신체 구조가 거의 같아서 바깥 소리를 거의 대부분 들을 수 있었다. 골이 들어가면 엄마 배속에서 발로 엄마를 차던 아기들이 굉장히 많았다. [youtube(h8FCeE-djaY)] * 이 길거리 응원에 숨겨진 뒷이야기로, 실제 FIFA에서는 대형 전광판을 이용한 야외 방영조차도 중계비를 걷어갔다. 당시 금액으로 약 2,000만원 정도였다는데, 한국 쪽은 돈독 오른 놈들이라 욕을 하면서도 돈 내고 야외 방영을 했고, 일본 쪽은 안 내고 안 했다. * 대회 전 우려가 되었던 훌리건 문제는 그리 나타나지 않았는데, 일단 한국과 일본이 공권력에 있어서 남다른 국가였던 것이 한몫했다. 거기다 한국에서 조 예선 경기를 하는 나라들은 극성 훌리건이 드문 국가들[* [[튀르키예]]도 유명하지만, 정작 이쪽은 원정 응원을 많이 오지 못했다.]이었고, 일본 쪽은 잉글랜드나 아르헨티나 등 전투력이 남다른 국가들이 있었으나 역시 별다른 소란을 벌이지 못했다. 당시 [[일본 경찰]]은 훌리건 제압용 무기만 따로 고안했고, 진압 훈련도 상당히 많이 했다. 한국이야 전경들의 숙련도가 남다르니 필요 없었을 듯.[* 사실 그것보다는 한국 사람들의 시민의식이 좋아진것도 있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소위 집단문화가 강하고 중요한 순간에 있어서 의식이 뚜렷하다. IMF때 보여주었던 시민 의식이 여기서도 빛을 발한 것이다. 그 뒤로 2007년 기름유출 사고때 보여주었던 집단 시민 의식도 그렇고 말이다. 거기에 한국은 치안이 매우 좋다.] * 포르투갈전을 하루 앞두고 [[미군 여중생 압사 사건]]이 일어났다. 그렇지 않아도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당시 [[아폴로 안톤 오노]]에게 뺏긴 금메달과 미국전 무승부 때문에 반미감정 고조되고 있었는데, 이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다. 하지만 월드컵 기간 중에는 4강 신화의 열기에 묻혔다. * 대회 기간 당시 경찰의 어처구니 없는 삽질로 현재까지 풀리지 못한 [[미제 사건]]이 있는데, 그게 [[청주 물탱크실 주부 살인 사건]]이다. 또 2002년 6월 6일에 경기도 파주시에서 미군 고압선 공사 중 사고로 1년여간 투병하던 전동록이 숨졌으나,[* 사고 전부터 공장 건물과 고압선이 가까이 있어 감전 위험이 상당한데도 주한미군은 공사를 강행했으며, 막상 사고가 일어나자 미군측은 피해자 전씨에게 위로금 60만 원만 주고 묻으려고 했다.] 미국전 당일에 열린 2002년 6월 10일 장례 투쟁은 경찰의 원천 봉쇄와 국민들의 무관심으로 사그러들었으며 사건 조차 묻혔다.([[http://m.hani.co.kr/arti/society/religious/438405.html#cb|한겨레 기사]]) * 도시빈민들 입장에서 월드컵 자체를 안 좋게 보는 시선도 있었다. 대회를 앞두고 1986 서울 아시안게임 및 1988 서울올림픽 때처럼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미관 정리를 명분으로 재개발을 하거나 노점상을 정리했는데, 진보단체 입장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탄압'이라며 말이 많았다. 특히 1999년~2000년에는 상암지구 철거 과정에서 기존에 살던 주민들이 생존권 투쟁을 벌였으나 용역들과 공권력의 강제집행으로 삶의 터전을 잃었고, 이 광경은 2002년작 독립영화 <상암동 월드컵 - 사람은 철거되지 않는다>에서 다뤄졌다. 또한 서울시도 2002년 1월 22일 '거리노숙자 특별보호대책'에 따라 월드컵 기간 중 '특별연수' 명목으로 노숙자들을 지방 민간시설에 수용하려는 계획을 추진해서 논란이 되자, 2월 7일에 이를 철회했다.([[http://news.imaeil.com/Society/2002052815124043356|기사1]], [[http://www.newscham.net/news/print.php?board=news&id=20216|기사2]],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0091639|기사3]],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0080193|기사4]]) * 월드컵을 앞둔 때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의 비리 혐의가 드러나 파문이 일었는데, 검찰은 대회가 모두 끝나고 소환하려 했으나 여론의 뭇매를 맞고 2002년 6월 20일에 긴급 체포하게 된다. * 당시 많은 남자 중학생들과 고등학생들이 월드컵에 빠졌던 나머지 그해 1학기 [[기말고사]] 전교생(특히 남학생)[* 물론 남학생이 스포츠에 더 관심이 많긴 하나 그 당시의 월드컵 열기는 남녀노소 상관없었다. 상갓집에서도 월드컵 응원하는 판에 심지어 당시는 동네 아줌마들도 모이면 축구 얘기를 할 정도로 분위기가 월드컵에 올인되어 있었다.] 평균 점수가 수직 하락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실제로 월드컵 때문에 학교 기말고사가 연기된 사례도 많았고 심지어 그 해 말에 있었던 [[200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평균이 낮게 나왔던 것도 이것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 해 여름에는 [[아폴로눈병]]이 창궐하기도 하였는데 법정 전염병으로 인한 결석의 경우 공결 처리하는 규정을 악용하여 학교에 가기 싫은 학생들이 서로 눈병을 옮겨주는 풍조가 생겨 수업 결손이 유난히 많은 해였다.] 또 일부 학교에서 한국 경기를 직관하는 학생들은 학교에 조퇴 신청을 하기도 했는데 일부 학생들은 티켓 있는 척하고 조퇴하려다가 선생님에게 걸린 사례도 있었다. 사실 월드컵 뿐만 아니라 아시안게임, 지방선거, 대통령 선거 등 메가 행사가 1년 내내 몰려있었기 때문에 나라 전체가 2002년 동안 많이 들떠있어서 공부하기엔 정말 최악의 환경이었다. * 2002년 월드컵 당시 대학들은 월드컵 기간 중에 수업이 있으면 월드컵 관람에 지장이 있다는 이유로 [[여름방학]]을 예년에 비해서 일찍 했다고 한다. * 2014년 JTBC 드라마 《[[12년만의 재회 : 달래 된, 장국|12년 만의 재회 - 달래된장국]]》에서 한일 월드컵 당시의 경기 영상이 등장한 바 있다. [[2002년]] [[6월]] 당시 중원병원 로비에서 직원들과 손님들이 월드컵 중계 방송을 보는 설정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의 8강전이 있던 날, 두 주인공이 [[성관계|검열삭제]]를 해서 여자주인공이 임신을 하게 된다.] * [[코미디언]] [[이주일]]도 이 경기를 관람한 적이 있었다. 그는 폐암 말기로 병원에서 시한부 판정인 3개월을 훨씬 넘겨 한국의 4강 신화를 [[휠체어]]를 타고 관람할 수 있었다. 월드컵 첫승 제물이었던 [[히딩크호/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폴란드전|폴란드전]] 당시에 보건복지부장관의 초청을 받아 직접 경기를 관람하였으며, 이후 대표팀이 [[히딩크호/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포르투갈전|포르투갈을 이기고]] 16강에 진출한 후 [[히딩크호/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이탈리아전|이탈리아전]]에서 [[안정환]]이 [[골든 골]]을 터뜨렸을 땐 너무 기뻐서 "암까지 이겨내고 건강을 반드시 되찾겠다"고 모 방송에 인터뷰를 하였다. 그러나 그건 그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월드컵이 종료되고 2달 뒤 폐암 투병 끝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 이 월드컵 기간 동안 가요계와 드라마계, 예능계는 그야말로 대불황이었다. 사람들 관심이 Only 월드컵이었으니까. 비몽이 타이틀 곡인 코요태 4집(50만 장 판매)정도가 극히 드문 예외였다. 다만 월드컵 관련 음반은 인기가 있었는데 [[윤도현]]의 [[오필승 코리아]] 등 많은 월드컵 응원가들이 방송에 자주 나왔고 노래방 기계에 들어가기도 했다. * [[한국야구위원회]]는 월드컵 한국 경기가 있는날 예정된 프로야구 경기를 순연시켰다.[* 이 시즌은 프로야구 창설 이래 가장 암흑 시즌이기도 하다. 평균 관중이 4501명으로 역대 2번째로 낮다.[* 2004년도 있긴 하지만 그 때는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병역비리 사건]] 말고는 딱히 큰 사건 사고가 없으면서 야구하기 정말 최적화된 환경이었기 때문에 예외로 친다.] 반면 일본프로야구는 야구 기반이 워낙 잘 다져진 나라이기도 하고 해서 월드컵 디버프를 그다지 받지는 않았다. 센트럴리그 평균관중이 31,532명, 퍼시픽리그 평균관중이 23,100명이다. 그럼에도 일본프로야구도 일본 축구대표팀 경기가 있는 날은 게임을 하지 않았다.] * 북한 [[조선중앙TV]]에서 [[http://v.media.daum.net/v/20020624111918374|일부 경기를 중계 방송]]했다. [[http://archive.li/aJpMx|대략 30여 경기를 중계방송]]했는데 전부 녹화 후 편집해 중계였으며 한국, 일본의 본선 조별리그 3경기는 중계하지 않았으며 8강에 진출한 미국의 5경기도 중계하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의 경기는 16강 경기만 녹화 중계했다. * 한국과 튀르키예의 3·4위전 당일 [[제2연평해전]]이 발생했다. 당시 국내 언론사들은 월드컵 관련 보도에만 집중했고 특히 국가적 비상 사태를 우선적으로 보도해야 할 지상파 3사도 3·4위전 중계에 초점을 맞추고 사건을 단신으로 다루었다. 이후 한국에 있던 외신들이 긴급 기사로 다룬 것과 대조되면서 이에 대해 강한 비판을 받았다. 한편 선수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묵념을 한 이후 경기를 시작했다.[* 안정환이 마리텔에 출연하여 당시 상황에 대해 밝혔다.] * 동시기에 개최되었던 [[2002 NATE배 온게임넷 스타리그]]는 하필 타이밍이 안 좋게 한일 월드컵 기간과 동시기에 개최되어 버렸고, 결국 결승전 관중수가 한일 월드컵의 열기에 묻혀버려 대략 700명 정도밖에 안 되는 [[온게임넷 스타리그]] 사상 최악의 흥행 실패 대회로 남게 되었다. 심지어 우승자인 [[변길섭]]은 아예 스타리그 우승자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고, 준우승자 강도경도 스타리그 준우승 2회 기록을 [[콩라인]] 자격 요건을 충족시켰지만 이 대회에서 준우승을 한 것도 묻혀서 이것마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이다.[* 사실 이 대회가 흥행에 실패를 한 건 한일 월드컵의 열기에 묻힌 것도 있지만 그 당시 대회 시드를 받았던 [[임요환]], [[홍진호]], [[김동수(프로게이머)|김동수]], [[조정현(프로게이머)|조정현]]의 16강 조기 광탈, 그 당시 [[변길섭]]과 [[강도경]]의 [[한빛 스타즈]] 팀킬 결승 등의 요인도 있었다. 그래서 반대편 [[리복배 KPGA 투어 2차 리그]] 결승전은 아예 8강 스페인전 당일에 열고, 팬들과 선수들이 다 같이 결승이 열린 양재동 한전 아츠풀 센터에서 낮에 열린 스페인전 경기를 응원한 뒤, 축구 경기가 끝나자 바로 결승전을 여는 참신한 시도로 흥행에 꽤 성공했었다. 거기에 대진도 팀킬 경기이긴 하지만 [[홍진호]]와 [[이윤열]]이라는 흥행 카드들이 올라왔었다. 그래도 다행히 다음 시즌인 [[2002 SKY배 온게임넷 스타리그]]는 결승전이 [[박정석]]의 [[가을의 전설(스타리그)|가을의 전설]] 재현이냐 [[임요환]]의 전승 우승이냐의 떡밥과 함께 역대 스타리그 최다 결승전 관중인 25,000명이 모이면서 흥행에 대성공한다.] * 당시 모든 국민들을 열광하게 만든 히딩크호 태극전사들과 같은 월드컵의 주역들 중 코칭 스태프 중에서는 [[핌 베어벡]] 전 [[오만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선수들 중에서는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FC]] 감독이 가장 먼저 하늘의 별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사인이 [[암]]이었다. 참고로 2002 월드컵 개막전 골을 넣은 [[세네갈]]의 [[파파 부바 디오프]]도 2020년 11월 29일에 [[근위축성측색경화증]]으로 별세했다. * 한국의 4강 진출을 이끈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이 2021년 9월 [[퀴라소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끝으로 지도자 은퇴 선언을 했다. * 2022년 6월 5일, 2002년 월드컵 20주년을 맞아 한국팀에 출전했던 선수들이 모여 축구 경기를 하는 팬서비스를 선보였다.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449&aid=0000228310|#]]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